[주일설교, 2021.12.26, 김진영 담임목사] 절망을 통해 찾은 하나님의 은혜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1년 12월 26일 (주일, 한 해의 마지막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절망을 통해 찾은 하나님의 은혜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30장 1-8절 |
| 함께 읽은 말씀 | 사무엘상 23:16-17 |
| 영상 | https://youtu.be/AzQK1pkoZRM (설교 약 26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식을 악·씩을 악·히 글 락"→시글락, "4 5로·4 올해"→사울, "아이도 밴"→아히도벨, "마실래"→바르실래, "애벌레 스팅"→에버래스팅)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영상은 설교 첫마디부터 시작하며, 본문 봉독 장면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질문 | 한 해 동안, 또 믿음으로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인가. 다윗에게는 시글락 사건과 압살롬의 반란이었을 것이다. |
| ② 비교 | 압살롬의 반란 때는 그래도 곁에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글락은 그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이다. |
| ③ 절망 | 사흘을 달려와 보니 마을은 불타고 가족은 끌려갔다. 아말렉의 소행이라 찾을 길도 없다. 부하들은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한다. |
| ④ 반전 | 그때 다윗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었다(삼상 30:6). 같은 표현이 요나단이 찾아온 장면(삼상 23:16-17)에 나온다. |
| ⑤ 은혜의 내용 | 성령님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다. "이 상황조차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믿음이 생겼고, 다윗은 홀로 일어나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다. |
| ⑥ 시글락의 의미 | 평화롭고 안정되었지만 믿음의 삶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시글락을 불태워 정리해 주셨다. |
| ⑦ 이번 달의 경험 하나 | 기도를 멈추고 적당히 살았더니 오히려 잘되다가 시글락 같은 일을 당한 한 형제의 상담. |
| ⑧ 환난 | 환난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환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은 유익이고 복이다. |
| ⑨ 이번 달의 경험 둘 | 성탄절 전날 추위 속에 감사 기도를 하러 본당을 찾아온 한 가족. |
| ⑩ 말씀과 자람 | 말씀이 죽었던 영혼을 살린다. 믿음 생활은 같은 은혜의 반복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 "이것으로 족합니다"가 오히려 교만이다. |
| ⑪ 자전거 | 넘어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는 것이다. 샬롬과 안식, 천국도 그와 같다. |
| ⑫ 결론 | 페달을 멈춘 다윗을 다시 불러 주신 하나님이 우리 삶에도 개입하신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살자. |
3. 결론 — 페달을 멈춘 다윗을 다시 부르신 하나님
- 다윗은 시글락에서 하나님을 향해 페달 밟는 것을 멈추고, 자기 꾀로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
-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께로 다시 불러 주셨다. 그것이 시글락에서 다윗이 받은 은혜다.
-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항상 개입하셔서 넉넉한 은혜를 주실 것을 믿는다.
- 그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를 마치며 목사님이 주신 기도 제목은 한 가지다.
- 날마다 페달을 밟는 삶 — "하나님, 이 땅에서 저의 삶이 머물러 있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날마다 페달을 밟으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예배드리는 교우들 가운데 시글락에서 절망한 다윗과 같은 상황에 있는 교인이 있다면, 이 모든 환난조차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주셔서 지치고 상한 영혼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했다. 또 영적인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리에서 물러나 시글락의 평안 속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교인들이 있다면, 다시 페달을 힘차게 밟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은혜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어제보다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복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30:1-8)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30:1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르렀다. 그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네겝(남쪽 지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여 시글락을 쳐서 불살랐다. |
| 30:2 | 아말렉 사람들은 거기 있던 여인들과 젊은이, 늙은이를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로 갔다. |
| 30:3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보니 성읍은 불탔고 아내와 자녀들은 사로잡혀 갔다. |
| 30:4 | 다윗과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다. |
| 30:5 |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다. |
| 30:6 | 백성이 각기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했다. 다윗이 크게 다급했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
| 30:7 |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했고,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 가져왔다. |
| 30:8 | 다윗이 여호와께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여호와께서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고 대답하셨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인가
목사님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두 가지 질문으로 설교를 여셨다.
- 한 해를 지내면서 어려웠던 일이 있다면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 예수님을 믿고 이때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볼 때 제일 어려웠던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
그리고 같은 질문을 다윗에게 돌려 보셨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다윗을 만나 "믿음으로 살아갈 때 언제가 제일 힘들었습니까" 하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할까. 목사님은 "저의 추측입니다"라고 전제하시고, 말씀을 계속 보아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윗의 인생에서 정말로 힘들었던 때가 시글락에서의 사건과 인생 후반부의 압살롬의 반란이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밧세바 사건은 왜 여기에 넣지 않는가
- 밧세바 사건도 힘들었다.
- 그러나 그것은 다윗 자신이 잘못한 일이기 때문에, 힘들었다기보다는 회개하는 시간이 다윗에게 더 컸을 것이다.
-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어렵고 힘든 와중에 내가 처했구나" 하고 괴로웠던 때는 압살롬의 반란과 시글락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6-2. 압살롬의 반란 때보다 더 힘든 상황
압살롬의 반란 — 사실 소망이 없어 보였다
- 압살롬이 여러 해 동안 공작을 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윗을 떠나 압살롬에게로 다 갔다.
- 아히도벨도 다윗을 떠나 압살롬에게 갔다. 아히도벨은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계략을 준다"는 말을 듣던 사람이다.
그래도 그때는 곁에 사람이 있었다
- 예루살렘을 떠나 시므이에게 저주를 받으면서 피난할 때에도 다윗 곁에는 생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바르실래라는 사람도 와서 도왔다.
- 충성된 다윗의 군대가 다윗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그 사실에 비하면 지금 시글락에서의 사건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할 때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이다.
6-3. 시글락에서 벌어진 일
사흘 만에 달려온 길
- 다윗의 마음에 불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 아벡에서 시글락까지는 100에서 120킬로미터 정도 된다. 사흘 만에 달려왔다는 것은 하루에 40킬로미터를 움직였다는 뜻이다. 목사님은 우리가 아는 거리에 빗대어 설명하셨다(자막이 깨져 정확한 지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8장 참조).
- 말이 없으니 뛰어왔을 것이다.
이상하게 한 명도 남겨 두지 않았다
- 전쟁에 능한 다윗이라면 수비대를 남겨 두고 전쟁터에 갔어야 한다.
- 그런데 이상하게 이때는 600명을 다 데리고 갔다. 시글락에는 마을을 보호할 사람을 두지 않았다.
- 다윗은 1년 4개월 동안 주위 사람들을 약탈하고 죽이면서 다녔기 때문에 분명히 위험이 있을 것을 예상했을 텐데, 이상하게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전쟁터에 다 데리고 갔다.
도착해 보니
- 급히 사흘 만에 도착해 보니 온 마을이 불타 없어졌다.
- 그런데 죽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 다윗의 경험으로 볼 때 이것은 분명히 아말렉이 한 일이다. 아말렉 사람들은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 착해서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팔면 돈이 더 많이 되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다. 불타고 약탈당했는데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고 "아말렉의 소행이구나" 하고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더 절망했다
- 어떤 부족이 했다면 그 부족을 쫓아가면 된다.
- 그런데 아말렉은 본거지를 두지 않고 이동하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디로 움직였는지 알 길이 없다.
- 그래서 함께 있던 사람들이 더 절망했다. 마을이 불탄 것도 절망이고 약탈당한 것도 절망인데, 아말렉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모든 사람이 "소망이 없다. 찾을 길이 없다"고 여겼다.
- 성경은 전쟁터에서 지내 온, 고생에 익숙한 사람들이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고 말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윗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울었다.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자"
- 그런 다음 다윗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에게 이런 절망과 슬픔을 가져다준 다윗을 죽여야 되겠다. 돌로 쳐서 죽이자."
- 부하들이 어려운 시기에 자기와 마음을 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크게 실망하고 이 슬픔과 불행을 가져온 책임이 지도자에게 있다며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 그때 다윗의 마음이 사울 왕과 같이 다급하게 되었다.
6-4. 반전 —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었더라"
그런데 이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을 찾아왔다.
- 절망하고, 소망이 없고, 아무도 자기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 할 때에 다윗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목사님은 이것을 "반전"이라고 하셨다.
- 30장 6절: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다윗의 마음이 다급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용기를 얻었다"는 사건이 있다.
같은 표현이 사무엘상 23장에 나온다
목사님은 사무엘상 23장 16-17절에 똑같은 단어가 쓰이고 있다고 하셨다. 다윗의 마음이 힘들었을 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었다는 말씀이 거기에 있다. 사울 왕에게 쫓겨 수풀에 피해 있을 때 요나단이 찾아와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다윗을 만나 한 말이다.
(회중과 함께 사무엘상 23:16-17 낭독)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삼상 23:16-17)
요나단은 어떻게 용기를 불러일으켰는가
- 시글락에서 절망 가운데 있던 다윗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얻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무엘상 23장이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의 마음에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한 것이다.
- 요나단은 정말로 믿음의 사람이다. 절박한 상황 속에, 죽음의 두려움 속에 있는 다윗에게 찾아와 다윗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었다.
- "내가 너와 함께해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여 다윗의 마음을 용기 있게 회복시켜 준 것이다.
6-5. 시글락에서는 성령님이 그 일을 하셨다
- 그때는 요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셨다.
- 그런데 시글락에서는 성령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이런 감동을 주신 것이다.
- 다윗에게는 절망과,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부하들의 슬픔과, 자기를 배신한 부하들밖에 없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을 딱 바라볼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이 기억나게 하신 말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 "너는 내가 기름 부은 종이다."
- "너는 내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로 작정한 내 종이다."
- "그리고 내가 이 나라를 너에게 줄 것이다."
그 약속의 말씀을 다윗에게 기억나게 하셨다.
그 말씀이 낳은 믿음
- 그 사실을 볼 때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주장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말로 절망이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 하나님을 딱 생각할 때 다윗의 마음에 "아,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겼다.
- 그 믿음으로 다윗은 그 절망 속에서 지도자로서 혼자 분연히 일어섰다.
- 그리고 제사장을 불러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지금 이 상황조차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은혜를 구했다. 그 뒤의 사건은 본문 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6-6. 번번이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께서 다윗을 번번이 일으켜 주신다.
- 다윗이 하나님을 찾지 않은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먼저 신실하게 찾아오셔서 다윗의 삶을 환난에서 건져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다.
목사님은 회중에게 적용하셨다.
- 지난 1년의 삶을 생각할 때, 그리고 믿음으로 이때까지 살아온 삶을 생각할 때, 시글락에 찾아오신 하나님처럼 내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을 줄로 믿는다.
- 믿음 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 되기가 참 어렵다.
- 하나님께서 내 삶에 찾아오셔서 왜 이런 어려움이 왔는지, 이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어떻게 선을 이루시는지, 그 하나님을 경험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되어 있다.
6-7. 시글락을 불태우신 것이 은혜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시글락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글락에서의 다윗의 삶
- 시글락에서 다윗은 오랜만에 맞이한 평화로운 삶,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모든 생활을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살 수 있다.
- 그런데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믿음의 삶을 살지 않는다. 죄만 짓고 있다.
- 약속의 땅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두신 자리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혼자 도망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글락을 불태우셨다
- 이런 환난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다윗은 자기의 삶을 시글락에서 편안한 가운데 허비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다윗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오셔서 은혜를 주신다. 그래서 시글락을 다 불태워 버리신다. 거기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 다윗은 시글락에 살 사람이 아니다. 힘들어도 약속의 땅에 와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전쟁하면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할 사람이다.
- 눈으로 보기에는 시글락이 다 황폐해져서 슬프다. 그러나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정리를 잘해 주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이렇게 찾아옵니다." 한 해를 돌아보고 이때까지의 삶을 돌아보면서, 평안하고 행복한데 내가 시글락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정말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6-8. 이번 달의 경험 ① — 한 형제의 상담
목사님은 올해의 마지막 달인 이번 달에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일을 경험했다고 하셨다. 첫째는 한 형제가 찾아와 자기 삶을 돌아보며 한 이야기다.
- 하나님께 여러 가지로 기도하며 간구하며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오랫동안 들어 주시지 않았다.
-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열심히 하던 기도도 멈추고 신앙생활도 적당하게만 하기로 했다.
-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살아도 모든 것이 잘되었다. 오히려 기도를 열심히 할 때보다 잘되었다.
- 그러다가 시글락과 같은 일을 당했다.
그 형제가 "목사님, 상담할 것이 있습니다" 하며 털어놓은 고민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평안하게 살았을 때 형통해서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을 당했습니다. 환난을 당해서 하나님께 다시 나오려고 하니 양심의 가책이 됩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을 안 찾다가 환난과 어려움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찾아와 은혜를 구하고 기도하려고 하니 양심의 가책이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목사님은 회중에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신 뒤 자신의 답을 말씀하셨다.
- "나도 형제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는 형통하고 안정되고 성공할 때에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본성이 있다.
-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지 않으셨다면 다윗은 시글락에서 평생 살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 내가 있는 자리가 올바른 자리인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인지 돌아보게 해 주신다.
- "내가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께로 다시 돌이키시기 위해 이런 일을 허락하셨구나."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해 시글락을 불태우시고,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해 형통하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
6-9. 환난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 환난은 괴로운 것이다. 환난 자체, 질병 자체, 고난 자체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 그러나 환난과 어려움과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고 복이다.
환난은 어디에서 오는가
-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신다. 굳이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지 않으셔도 우리는 환난을 항상 만나게 되어 있다.
- 이 세상 자체가 항상 환난이 있는 곳이다.
-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나 습관이나 결정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 계속 빠지게 된다.
-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하고 아무리 정의롭게 살아도, 내 주위에서 음주 운전하는 차량이 와서 들이받을 수 있다. 내 주위의 악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내 삶에 들어와서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난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게 되는 것,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다.
6-10. 이번 달의 경험 ② — 성탄절 전날 찾아온 가족
- 성탄절을 앞두고, 날이 많이 추웠던 때에 교회로 한 가족이 찾아왔다. 자녀 둘을 데리고 부모가 함께 왔다.
- 목사님이 "어떻게 추운데 왔느냐"고 묻자, 내일 성탄절 예배에는 너무 추워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본당에서 기도하려고 가족이 찾아왔다고 했다.
- 올 한 해 동안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해 온 한 아이의 가족이다. 교회가 아픈 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는데, 특별히 그 아이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 것을 교우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하셨다.
목사님은 물으셨다. "감사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쳤는데, 성탄절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만한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 환난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러나 그 환난을 통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환난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을 통해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 하나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 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신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형통한 일이든 질병이든 괴로운 일이든 억울한 일이든, 이 모든 일을 사람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주관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
- 이 믿음 안에 우리가 서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다.
6-1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린다
- 시글락에서 절망하여 울고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찾아가셔서 가르쳐 주신 것은 이것이다. "지금 이 모든 불행과 환경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다.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그 믿음을 성령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딱 주신 것이다.
-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죽었던 다윗의 영혼이 살아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린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 안에서 날마다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 생활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 생활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신앙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신앙의 스타일에서 점점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늘 똑같은 은혜를 받는 집회
목사님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수련회나 집회에 대해 한 가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하셨다.
- 그 수련회, 그 집회에 가면 항상 그 은혜를 준다.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는다. 신앙이 떨어지면 다시 그 집회에 간다.
- 어떤 집회든 어떤 신앙생활이든 똑같이 적용된다. 거기에 가면 받는 은혜나 감동이 똑같다.
-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좋다. 그런데 똑같은 은혜다. 거기에 가면 성령님께서 딱 그 은혜밖에 안 주시는 셈이다. 그보다 아래로도 안 주시고 그 위로도 안 주신다.
- 목사님은 "위험한 것"이라고 하셨다.
6-12. 믿음은 자라는 것이다 — "이것으로 족합니다"라는 교만
- 살아 계신 하나님,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똑같은 은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점점 자라는 것이다.
- 어린아이 때의 일을 버리는 것이다. 어린아이 때에 경험했던 하나님이 아니라, 삶의 여러 환난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옛날에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셨는데, 하나님이 정말로 이런 하나님이시네요"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살아 있는 믿음으로 커지는 것이다.
- 그 믿음이 자라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방법이 환난을 주시는 것이다.
이런 말이 교만이다
"하나님, 저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에게 더 많은 것 안 주셔도 됩니다. 이것으로 저는 참 족합니다. 더 많은 것을 주시면 저는 교만해지니까, 저는 이것으로 만족하며 자족하며 살겠습니다."
목사님은 "이게 교만입니다" 라고 하셨다.
-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 정말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항상 더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 작년보다 올해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 작년에 했던 경건 생활보다 올해 경건 생활을 더 한다.
-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이 점점 자라는 것이다.
6-13. 자전거의 비유 — 샬롬과 안식, 그리고 천국
자전거에서 넘어지지 않는 법
- 믿음 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똑같다. 자전거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자전거를 잘 타는 분들 가운데에는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딱 잡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 넘어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페달을 밟아서 앞으로 쭉 가는 것이다.
샬롬은 낙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샬롬, 평안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다.
- 그런데 그 샬롬과 평안은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 에덴동산같이 모든 것이 풍족하고 은혜가 충만한 곳에서 그것을 즐기고만 있으면 하와처럼 반드시 타락한다.
하와는 왜 타락했는가
- "하와가 왜 타락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리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 타락의 핵심을 가만히 보면 이렇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점점 커지고 점점 하나님께 가까워지도록 되어 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원칙이다.
- 하와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일에서 멈추어 버렸다. 자전거를 타고 딱 멈추어 서 있으면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의 상태
-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서 페달을 밟으며 갈 때에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 환난이 와도 가까이 가고, 선한 일이 와도 가까이 간다.
- 내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으면서 하나님께 쭉 가까이 가고 있는 것, 이 상태가 성경이 말하는 안식의 상태, 샬롬의 상태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안식으로 부르실 때, 그 안식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이 아니다. 쉼 없이 계속 페달을 밟으면서 하나님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는 곳, 그곳이 천국이다.
천국을 잘못 알고 있다면
- "천국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한다. 천국에 가면 찬송만 부르고 예배만 드리고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천국을 잘못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답답하신 하나님이겠습니까?"
-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면 갈수록 풍성하신 분이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영원하다(에버래스팅).
-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기쁨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난 듯싶으면 또 다른 길이 있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달려가는 기쁨이 계속 이어지는, 그 기쁨 가운데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신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다윗이 시글락에 오기까지 (주전 약 11세기 말, 사울 통치 말기)
| 순서 | 사건 | 성경 |
|---|---|---|
| ① |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는다. 설교의 "너는 내가 기름 부은 종"이라는 약속의 바탕이다. | 삼상 16:1-13 |
| ② | 사울의 시기를 받아 여러 해 동안 광야를 떠돈다. 십 광야 수풀에서 요나단이 찾아와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한다. | 삼상 23:15-18 |
| ③ |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땅으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600명과 함께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간다. 설교에서 "혼자 도망간 것"이라고 하신 대목이다. | 삼상 27:1-4 |
| ④ | 아기스에게서 시글락을 받아 머문다. 블레셋 지방에 산 기간이 1년 4개월이다. | 삼상 27:5-7 |
| ⑤ | 그술, 기르스,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여 남녀를 살려 두지 않고, 아기스에게는 유다 남쪽을 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한다. 설교의 "주위 사람들을 약탈하며 죽이며 다녔다", "죄만 짓고 있다"의 배경이다. | 삼상 27:8-12 |
| ⑥ |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아벡에 모인다. 다윗도 아기스를 따라갔으나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돌려보내진다. | 삼상 29장 |
| ⑦ | 사흘 만에 시글락에 돌아오니 성읍이 불타고 가족이 끌려갔다(오늘 본문). | 삼상 30:1-8 |
| ⑧ | 다윗이 추격하여 아말렉을 치고 잃은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도로 찾는다. 설교에서 "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하신 내용이다. | 삼상 30:9-20 |
| ⑨ | 같은 무렵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고, 다윗은 헤브론으로 올라가 유다의 왕이 된다. 시글락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 삼상 31장, 삼하 2:1-4 |
설교에서 비교하신 압살롬의 반란 (다윗 통치 후반)
| 설교의 표현 | 성경 |
|---|---|
| 압살롬이 여러 해 공작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로 갔다 | 삼하 15:1-6, 13 |
| 아히도벨의 계략은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이 여겨졌다 | 삼하 15:12, 16:23 |
| 시므이가 피난하는 다윗을 저주했다 | 삼하 16:5-13 |
| 바르실래가 다윗과 그 백성을 도왔다 | 삼하 17:27-29, 19:31-39 |
| 충성된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떠났다(가드 사람 잇대 등) | 삼하 15:18-22 |
밧세바 사건은 사무엘하 11-12장에 기록되어 있고, 다윗의 회개는 시편 51편에 담겨 있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시글락 | 유다 남쪽 네겝 지방의 성읍. 본래 유다와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나(수 15:31, 19:5) 당시에는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영향 아래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확정되지 않았고 여러 유적지가 후보로 거론된다. |
| 아벡 | 블레셋 군대가 집결한 곳(삼상 29:1). 지중해 연안 평야의 북쪽, 오늘날 텔아비브 동쪽 부근으로 본다. 아벡에서 시글락까지의 거리는 시글락의 위치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대략 80~100킬로미터 안팎으로 보는 자료가 많다. 설교에서는 100~120킬로미터로 말씀하셨다. 어느 쪽이든 무장한 군인들이 사흘 동안 걷기에 매우 고된 거리다. |
| 가드 | 블레셋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 아기스 왕의 도성. |
| 네겝 | 유다 남쪽의 건조한 지대. "남방"이라는 뜻이다. |
| 십 광야 수풀 | 헤브론 남동쪽 유다 광야의 한 지역.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온 곳이다(삼상 23:15-16). 개역개정의 "수풀"은 히브리어 '호레쉬'로, 지명으로 보기도 한다. |
| 헤브론 | 시글락을 떠난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곳(삼하 2:1-4).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다윗 | 이새의 아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아직 왕이 되지 못하고 사울을 피해 다니던 시기다. |
| 사울 | 이스라엘의 첫 왕. 본문 직전인 28장에서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며 "내가 심히 다급하니이다"(삼상 28:15)라고 말한다. 30장 6절의 다윗도 "크게 다급하였다"고 되어 있어, 설교에서 "사울 왕과 같이 다급하게 되었다"고 하신 것과 이어진다. 같은 처지에서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고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었다. |
| 요나단 | 사울의 아들이며 다윗의 친구. 왕위를 이을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받아들였다. 십 광야의 만남이 성경에 기록된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다. |
| 아말렉 사람 | 네겝과 시내 반도 일대를 떠돌던 유목 민족. 출애굽 때 이스라엘의 뒤처진 약한 자들을 쳤고(출 17:8-16, 신 25:17-19), 그 뒤로도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혔다. |
| 아비아달 |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죽일 때 홀로 피해 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 왔다(삼상 22:20-23, 23:6). |
| 아히노암, 아비가일 | 본문 5절에 나오는 다윗의 두 아내. 다윗 자신도 가족을 잃은 처지였다. |
| 압살롬 | 다윗의 셋째 아들. 아버지에게 반역하여 왕위를 차지하려 했다. |
| 아히도벨 | 다윗의 모사(참모)였으나 압살롬 편에 섰다. |
| 시므이 | 사울 집안의 사람. 피난 가는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했다. |
| 바르실래 | 길르앗 사람. 나이 많은 큰 부자로, 피난 온 다윗 일행에게 양식과 침구를 가져다주었다. |
| 하와 | 첫 사람 아담의 아내.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었다(창 3:1-6). |
7-4. 문화
| 항목 | 설명 |
|---|---|
| 포로와 노예 | 고대 근동에서 전쟁이나 약탈로 사로잡은 사람은 노예로 부리거나 팔았다. 본문 2절이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갔다고 밝히는 것은 이런 관습과 닿아 있다. 뒤에 다윗이 길에서 만난 애굽 소년도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다(삼상 30:13). |
| 돌로 치는 것 | 이스라엘에서 공동체가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던 방식. 백성이 다윗에게 그 책임을 물으려 했다는 뜻이다. |
| 에봇 | 제사장이 입는 조끼 모양의 예복. 대제사장의 에봇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데 쓰는 우림과 둠밈이 든 흉패가 달려 있었다(출 28장). 다윗이 에봇을 가져오게 한 것은 하나님께 여쭙기 위해서다. 설교에서 "제사장을 불러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다"고 하신 장면이다. |
| 기름 부음 |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붓던 의식. 하나님이 그 사람을 택하여 직분을 맡기셨다는 표시다. |
| 수비대 | 군대가 출전할 때 본거지와 가족을 지키도록 남겨 두는 병력. 본문은 다윗이 수비대를 두었는지 직접 말하지 않지만, 성읍이 저항 없이 약탈당한 것으로 보아 지킬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 삼상 30:6.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하자크)가 쓰였다. 삼상 23:16의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에도 같은 동사가 쓰여, 설교에서 "똑같은 단어"라고 하신 근거가 된다. |
| 섭리(攝理) |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일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며 선한 목적으로 이끄시는 것. 설교의 "이것조차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가 이 뜻이다. 요셉의 고백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가 대표적이다. |
| 주장(主掌)하다, 주관(主管)하다 | 맡아서 다스리다. 설교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상황의 주인이시라는 뜻으로 쓰셨다. |
| 환난(患難) | 근심과 재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다. |
| 믿음의 선한 싸움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에서 온 표현. |
| 심판대 |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고후 5:10). 신자가 자기 삶을 주님 앞에서 셈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
|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고전 13:11. 설교에서 믿음이 자란다는 것을 설명하며 쓰신 표현의 출처다. |
| 샬롬 | 히브리어로 '평안, 평화'. 다툼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고 온전한 상태를 뜻한다. |
| 안식(安息) |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고 쉬신 데서 나온 말(창 2:2-3). 히브리서 4장은 신자가 들어갈 하나님의 안식을 말한다. 설교에서는 안식을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속 가까이 나아가는 상태로 풀이하셨다. |
| 하나님의 형상 |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가르침(창 1:26-27). |
| 자족(自足) | 스스로 넉넉하게 여김. 성경은 형편에 대한 자족을 가르친다(빌 4:11-12, 딤전 6:6-8). 설교에서 교만이라고 하신 것은 물질에 대한 자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알고 더 사랑하는 일에서 "이만하면 됐다"며 멈추는 태도다. 바울도 자족을 배웠다고 한 같은 편지에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고 했다. |
| 경건 생활 | 기도, 성경 읽기와 묵상, 예배 등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날마다의 생활.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함께 읽은 구절은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아벡에서 시글락까지의 거리를 우리가 아는 거리에 빗대신 대목은 자막에 "여기서 그대 전까지의 글"로 들립니다. "여기서 대전까지의 거리"로 짐작되지만 확실하지 않아 지명을 적지 않았습니다. 거리 수치(100~120킬로미터, 하루 40킬로미터)는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으며, 시글락의 위치가 확정되지 않아 자료마다 추정 거리가 다릅니다(7-2 참조).
- "다윗의 마음이 사울 왕과 같이 다급하게 되었다"는 대목은 자막에 "4 5로 1과 같이"로 들립니다. 이 자막에서 "4 5로"가 줄곧 사울을 가리키므로 그렇게 옮겼습니다.
- 결론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 앞에는 자막에 "포로 나 기간 중"으로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 중"으로 짐작되지만 확실하지 않아 본문에 넣지 않았습니다. 기도 제목의 "머물러 있는 삶" 앞에도 알아듣기 어려운 낱말("떼 내서")이 있어 뜻이 통하는 범위만 옮겼습니다.
- 성탄절 전날 찾아온 가족 이야기에서는 설교에 자녀의 이름이 나오지만, 투병과 관련된 사적인 사정이어서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 환난에 대해 설교에는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신다"(6-9)는 말씀과 "믿음이 자라게 하시려고 쓰시는 방법이 환난을 주시는 것"(6-12)이라는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두 대목 모두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 다윗이 수비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 아말렉이 노예로 팔려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점, 하와가 타락한 까닭에 대한 설명은 본문에 직접 적힌 내용이 아니라 목사님의 풀이입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와 시글락·아벡의 위치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